Day by Day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매일을 위한 움직임.


안수인, 이은우, 이예현

2021. 07.08--07.27

 



누구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그러나 체감적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무색하게 COVID19라는 상황 속에서 많은 활동들이 지연되고, 정체되어버렸다.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회적으로 부여된 지연의 괴리 속에서 시각예술을 하겠다는 우리는 여러 불안감에 직면한다.

작업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적 부담감과 여러 이유로 작업을 못하고 있음에 관한 자책감을 덜어내고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고민한다.

 

‘작업하는 나’와 ‘생활 속의 나’는 어떤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할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Day by Day>는 이러한 질문들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작가 세 명이 모여, 예술을 지속하기 위한 태도를 정비하는 한 달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30일 간 매일 진행한 드로잉으로, 각자가 ‘작업하기’에 대해 갖는 질문과 대답, 성취, 결과를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안수인

평소에 맛있을 거라 기대되는 음식을 마주하면 사진부터 찍는 버릇이 생겼다.

어느새 많이 쌓인 사진을 한꺼번에 보고 있으니 음식 재료들의 형태와 구조 같은 것들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던 순간의 감정과 이유들을 뒤로 제쳐놓고 음식에 대한 새로운 관심 아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음식을 그리는 동안,

내가 작업을 할 때 갖는(혹은 갖고자 하는) 태도들에 대해 떠올렸다.

문득, 음식을 먹기 전 사진을 찍고, 냄새를 맡고, 음식 속의 재료들을 하나씩 맛보거나, 여러 재료를 한꺼번에 입에 꽉 차게 넣어보기도 하는

음식을 대하는 과정 속에 녹아있는 태도와 그림을 그리는 태도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일상 속의 버릇과 작업을 위해 취하는 태도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반가울 일인가.

늘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던 ‘작업하며 사는 삶’이 조금은 나에게 가까워진 것만 같다.

 

 이은우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어떤 감정과 행동들을 드로잉한다. 특히 인간의 몸짓, 손짓, 눈짓 등 비언어가 나타내는 사람 간의 미묘한 거리감을 표현해왔다. 이번 전시의 드로잉은 사람과의 관계뿐만이 아닌 소박한 자연물, 사물들 간에 표출되는 감정 또한 느끼고 끄집어 내려했다.

드로잉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일상적인 행동과 같다. 회화 작업을 하기 이전부터 늘 어디엔가 끄적거리는 것이 생활이었고, 이 생활의 연장으로 지금까지 그림을 그려왔다고 볼 수 있다. 그 무엇보다 드로잉은 본연의 어떤 감정과 생각을 표출하는 큰 틀이기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것은 완성된 무엇을 위한 밑그림만이 아닌 그 자체이기에 내면의 중심에 다가가는 과정이 된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이번 Day by Day를 통해 ‘재밌게 그리기’가 일상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담아본다.

 

이예현

평소에도 꿈 일기를 토대로 작업을 해 왔지만 이렇게 한 달 내내 꿈 드로잉을 한 것은 처음이다. 내가 꾼 꿈 중에서도 흥미로운 꿈, 기억에 남는 꿈, 소중하게 느껴지는 꿈들을 추려 작업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Day by Day>는 매일 드로잉 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강제성을 띤 프로젝트다. 작업 루틴은 다음과 같이 세웠다.

 

1. 매일 아침 일어나 핸드폰 메모장을 켜 꿈 일기를 적는다.

2. 몸을 일으켜 이부자리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긴다.

3. 작성한 꿈 일기를 드로잉으로 옮긴다.

 

매일 한 장의 폴라로이드 필름을 소비하는 행위는 모든 꿈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선포였다. 평소라면 주제로 선정되지 못했을 희미한 꿈, 시시한 꿈들도 작업의 주제로 삼았다. 영감이 떠올라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일단 그리다 보면 영감이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으로 프로젝트에 임했다. 그림이 잘 풀리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성과 있는 날들이었다. 성실하게 작업을 지속하고 그 꾸준함 속에서 작은 성공과 성취를 얻는 것, 그게 내가 가져야 하는 작업 태도구나. 몰랐던 사실도 아닌데 새삼 처음 깨달은 것처럼 기뻤다.

기존의 꿈 드로잉에서는 꿈의 세부 내용을 감추고 은유적인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면, <Day by Day>에서 선보이는 꿈 드로잉에서는 재현에 가까운 사실적인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 있다. 감각적이고 세련된 표현을 연마하기보다 투박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담아 보고 싶었다. 작품을 구매하면 꿈의 전체 내용이 수록된 꿈 일기와 이부자리 폴라로이드 사진도 함께 동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