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딜 곳 없는 사다리   The Step without steps


박재형 안부 안수인 이동혁

2021.04.06.-05.01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있다. 아니 어쩌면 대체로 모든 익숙하지 않은 순간을 맞이한다면 그러할지도 모른다. 군이 예술이라는 장르로 비유하자면, 비어있는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려야 하거나, 악기를 배우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고민이 시작이 아닐까? 이러한 순간에 대체로 이미 경험된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도움을 받으며 실마리를 풀곤 한다.

그 ‘도움’이라 하는 것에는 막연하게도 ‘더 나아질 수 있음’이라는 믿음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마련이다. 같은(비슷하게라도) 과정을 지나쳤거나, 익숙한 경험에 의한, 내지는 숱한 시행착오의 반복을 지나쳐 온 일종의 선경험 따위와 같은 것을 향한 기대와 일방적인 신뢰. 그의 앞에는 이미 지나쳐온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는 미래를 예측하듯 느슨하게 때론 꽤나 확신에 찬 약속을 한다.

 

기획전 ≪디딜 곳 없는 사다리 The Step without steps≫ 전시는 앞서 언급된 믿음, 신뢰, 약속과 같은 단단함을 넘어선 견고한 성질이 무너지고, 깨지고, 분리되어버린 상태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자칫 믿는다거나 신뢰를 주고받는다거나 약속을 한다는 어감이 주는 무게감보다는, 이미 인지조차 않고도 겹겹이 쌓여 조금은 막연하게 스며들어있는 바탕을 포함하는 말이다. 어떤 형태로 남아있거나 눈에 보이지 않아도, 비록 나조차 행하거나 노력해서 알지 않아도 되는 그렇게나 당연한 것(상태)들. 이내 부러지고 소실되어 벌어진 간극과 연약함, 나아가 허무함의 자리를 말한다.

 

≪디딜 곳 없는 사다리 The Step without steps≫는 어쩌면 (무엇으로부터) 무너진 (알 수 없는) 출발점에서부터 나아가 그 자리에 머물게 된 ‘흔적’에 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전시에 참여하는 박재형, 안부, 안수인, 이동혁은 어떤 상실과 탄탄하게 지탱하는, 그렇게 믿었던 안정감에서 넘어지고 부서지거나 (구)부러진 상태를 각자의 흔적들을 통해 드러낸다. 흔적은 의심과 의문을 통해, 불편함과 불명확함을 통해, 비유와 비약을 통해 켜켜이 쌓여 연약한 듯 짙은 색을 띈다.

 

이쯤 되면 억측스럽게도 등장하고 있지 않은 몇 개의 단얻르의 나열이 떠오를지 모른다. 끝끝내 그 단어들은 들을 수 없을 것이고, 억지스럽게도 내뱉지 않으려한다. 단어 자체가 어떤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거나 지쳐서는 아니며 호기롭게 희망이나 새로운 변화(현상)를 말하려 해서도 아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있다. 익숙한 당연함보다 드러나지 않는 의연한 태도라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싶다.



글_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