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렁한 모서리   _석사학위 청구전



육체와 감각 경험의 괴리, 그것을 작업의 시작으로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과 조합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변형과정이 뒤따라 생겨난다. 변형의 연쇄과정은 관객과 작가로 하여금 비일상적 관계를 맺게 하여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된다. 이 변형의 연쇄로 2017년도 ‘몸뚱아리집’ 시리즈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동식물들이 인간의 뼈, 근육, 장기 등으로 이루어진 몸뚱아리 사이사이에서 공생한다는 낯선 감각에 대해 표현했다. 이번 <물렁한 모서리>전시는 낯선 관계들이 형성하는 무한한 변형과정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 전시는 극명하게 다른 두 작업과정의 충돌이 만드는 변주다. ‘둘기’시리즈는 치밀한 계획의 틀에 입각한 작업인 반면, ‘움찔대는 풍경’은 기존 계획의 틀이 없이 전복, 해체, 구축의 과정을 반복한다.



‘둘기’시리즈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생명체인 비둘기를 드로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비둘기를 관찰하고 그린 드로잉을 확정적 화면에 옮기고자 하는 순간, 나는 치밀한 계획의 틀을 형성한다. 계획의 틀은 일종의 효율성을 높이고 잠재적 상태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내재적 욕망의 표현 중 하나이다. 계획은 주로 화면의 면적에 상응하는 대상의 위치, 바탕의 질감, 바탕의 색깔, 속도에 따른 선의 표현 등으로 이루어지며, 반복적인 연습과 시뮬레이션을 거쳐 결과물에 도달할 때까지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완성된 작품에서 맞닥뜨리는 것은 계획 속에서의 안정된 익숙함이 아닌 불완전성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경험에의 흔적이다.



‘움찔대는 풍경’ 시리즈에서는 계획의 틀 없이 낯선 경험의 축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형상을 구축하고, 다시 무너뜨리기를 반복한다. 즉, 감각에의 괴리를 변형의 연쇄작용으로 승화시켜 계획의 부재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움찔대는 풍경’시리즈는 이 전에 진행한 해부학도감 드로잉의 발전된 방식을 취한다. 이전의 ‘몸뚱아리집’시리즈가 해부학도감의 도상을 세세하게 스케치하고, 화면에 맞게 스케치를 다시 옮긴 후 수시로 도상을 참고해 완성한 것이라면, 이번 시리즈는 아주 기본적인 형태들(동세, 구조, 외곽선 등)만을 화면에 선으로 표현한 이후에는 선의 흐름에만 집중해 색면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물렁한 모서리’에서는 계획성과 무계획성이 충돌하지만 그 경계에서 필연적 조화가 발생한다. 두 작업 과정의 결합은 유동적인 결과물이 주는 불안감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불안감은 결과물에 수차례의 손길을 이끌어 어떠한 형태로도 변형될 수 있는 물렁한 상태의 모서리를 탄생시키고, 계획에 따라 충실하게 진행했던 작업은 손길의 온도와 뒤섞여 처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된다. 물렁한 모서리, 그것은 어떤 과정에서든지 야기될 수 있는 의도적인 불안이며 무한대의 가능성이다. 나는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안고 그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면서 화면의 새로운 균형을 찾으려 끊임없이 시도한다.



나는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이 가져온 낯선 관계들을 표현하기 위해 선적 요소가 부각된 작품과 면의 집합들로 구성된 작품과의 조합, 그리고 물감의 얼룩과 배어남이 만들어낸 물성의 조합을 통해 다시 무한한 변형의 과정으로 나선다. _20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