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amiliar Burster》 작업노트
언젠가 동네 뒷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일행도 전부 잃어버린 채 산 속을 나 혼자 헤매다 넓게 펼쳐진 평평한 공간을 만났다.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높은 나무들 사이로 쨍하게 비쳐 들어오는 햇빛과 물에 젖은 풀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나를 확 감싸 안았고, 그 공간에 누웠을 때에는 비 온 후의 축축함이 스며듦과 함께 주변의 각종 식물들과 곤충 등의 낯선 생물체들이 마치 나의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의 이 경험은 나 자신이 가장 역동적이며, 아름다웠던 순간이었으며, 그 느낌이 아직까지도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다.
그 경험이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일까.
그 이후로는 나 스스로가 늘 무언가에 가로 막혀있고, 갇혀 있어 답답하다고 느낀다. 반듯반듯한 도시 속에서 쌓여온 나의 시간은 늘 나와 닮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이어졌다. 그렇게 내 눈의 높이는 철저하게 인간의 크기에 머물렀고, 이러한 경험들은 나에게 안도감, 익숙함,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권태로움, 지침,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남기기도 한다. 또한 나 스스로에게도 다른 이의 시선에 맞춰질 것을 강요하면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나 자신을 정제하고, 다듬는 행위를 끊임없이 해나간다. 정제의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발전’의 과정일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조악하고 억지스러운 꾸밈’을 내 안에 고착화시키는 과정이었다. 결국 이 모든 ‘발전의 과정’들은 나에게 커다란 결핍이라는 어둠의 공간을 남겼을 뿐이다. 이러한 어둠의 공간은 내 자신이 정제되어 갈수록 조용히 커져버려 그 심연 속에서 더 이상 ‘나’라는 존재를 찾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어둠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 나와는 전혀 다른 낯선 생물체로 시선을 돌린다.
내 작업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물체, 즉 타종과의 유기적 결합을 이루어 내기 위한 시도에서 시작된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타종의 생물체들은 강력한 에너지를 각자의 몸 속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는 신체라는 외형의 공간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정제된 채로 외부로 표출되고, 이러한 정제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생물체들은 소통이 제한된다. 작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낯선 존재들과의 결합은 인간과 타종의 외형 공간에 갇혀있는 각자의 에너지들을 맞닿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견고하게 벽을 이루었던 외형이 허물어지고, 서로의 에너지들이 맞닿음으로써 그들 간의 위계적 질서나 상하 관계 등은 소멸된다. 이러한 맞닿음은 나의 작업 안에서 인간이나 동물, 식물 등의 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며, 모든 것이 하나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되어 기존과는 다른 잠재적 에너지의 발현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비정상적, 비발전적 결합의 시도들은 ‘나’ 스스로를 가감 없이 직시하는 이상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 ‘나’라는 어두운 공간으로 인해 드러나는 모순성과 한계들은 허물어진 인간의 신체 사이로 낯선 생물체들이 침투하는 과정을 통해 진실된 1자로써 새로운 존재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나에게 있어 인간과 타종과의 유기적 결합은 앞서 말한 어렸을 적의 경험처럼 진실된 나의 모습을 통해 끝없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매개적 순간을 접하기 위한 시도이다._2015.03
《Unfamiliar Burster》 전시 리뷰
안수인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볼 때 괴이하다고 여겨지는 생물, 식물과 결합된 인간처럼 서로 다른 종들의 결합을 그린다.
이러한 결합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질감에서 오는 언캐니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배타적인 거부감이 아닌 어딘지 모를 유머러스한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들을 통해 ‘인간’의 범주와 ‘인간’이 갖는 생태계 내의 특권적 위치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신에 문신을 새긴 사람, 인간의 신체에 이질적인 타종의 생물의 부분이 합성된 모습, 인간의 장기 내부에 담겨진 사물들... 그녀의 드로잉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지만 완전한 인간의 모습은 아니다. 새로운 종의 생명체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녀는 종이 한 장 한 장을 직접 염색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면서 각각의 이미지들에 개별적인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미지들의 우열 없는 제시 방식, 전시 공간에 전체에 늘어놓는 방식을 통해 일종의 생태계적 표본처럼 보인다.
2015.04.23.
글_하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