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대는 틈 사이 _작업노트
화상을 입었다.
여섯 살이 감당하기에는 꽤나 큰 화상이었다. 나 스스로가 아프다는 사실보다 당연하게 위치해 있어야 할 신체들이 흘러내리고, 보이지 말아야 할 장기들이 드러난 채 생활을 하는 여러 환자들의 모습이 더욱 생경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후 흉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강제로 계속 피부를 벗겨내는 몇 달간의 치료과정은 외형적으로는 흠 없이 깨끗한 피부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스스로가 녹아내리고 닳아 없어지는 듯한 느낌을 매 순간 느껴야 했다. 이러한 어릴 적 경험은 나로 하여금 신체라는 당연하고, 견고한 감각의 공간이 허물어지는 순간을 끊임없이 상상하게 하는 시작점이 된다.
신체에 관한 물리적 경험과는 대조적으로,
식물이나 동물 등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체들에 대한 경험은 전무후무했던 나는 백과사전이나 해부도와 같은 2차적 자료의 힘을 빌려 그들에 대한 나의 넘쳐나는 궁금증을 해결해야 했고, 내가 선택한 이러한 관계 맺기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감각적인 시도였으나, 한편으로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특성을 부여하고, 한정지어 판단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해부학 서적과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전면성, 평면성을 지닌 이미지들을 그라운드 위에 단편적으로 표현한 뒤 그것들이 연결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 계속 확장시켜 나가는 것에서 나의 작업이 시작된다. 내게 익숙하고,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신체라는 공간이 허물어지는 틈 사이에 물리적으로 전혀 경험할 수 없었던 존재들을 작업 안에 배치시켜 놓음으로써 내가 이해한 방식의 신체적, 감각적 세계를 새롭게 구현해보고자 한다. 이렇게 구현된 세계는 나의 바람으로 예상할 수 없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확장되어 나가지만 동시에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온전하지 못하듯 낯설고 어색하며, 허술하게 연결되어 있다. 익숙하고 당연한 것의 부재,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과 상상, 그리고 그들의 만남을 통해 확장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담지만 그 가능성이 가지는 불완전성. 이것이 내가 작업을 진행하면서 지속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지점이다.
2015.12
안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