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뚱아리집   _작업노트



여섯 살 무렵, 꽤나 심각한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피부는 녹아내리고 부풀어 올랐으며, 제멋대로 다시 뭉쳐졌다.

이 때의 사고는 섬세하게 쌓이고 있던 일상적 감각의 경험들을 한순간 혼란에 빠트렸다.

감각의 혼란은 낯선 감각을 각인시켰으며, 제멋대로 뒤엉켜버렸다.

사고 전에는 정신과 감각, 육체가 조화를 이루어 ‘나’라는 주체를 형성하였으나,

예기치 못한 사고는 쉽게 몸뚱아리를 변형시켜 정신으로부터 내 감각과 육체간의 괴리를 만들었다.



감각의 혼란과 엉킴은 알 수 없는 불안증을 야기하였고,

불안증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해부학도감을 보며 논리적 측면에서의 안정감을 일시적으로 찾았다.

아마도 나는 그러한 서적들을 반복적으로 접함으로써 정신, 감각, 육체 간의 괴리감을 잠시나마 해소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 괴리는 새로운 감각을 불러일으켜 익숙하지 않은 형상과 조합에 대한 상상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상상의 기반의 전개인 《몸뚱아리집》시리즈는 지역적, 기후적 혹은 시기적 조건의 차이로 인해 현실에서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동식물들이 인간의 뼈, 근육, 장기 등으로 이루어진 몸뚱아리 사이사이에서 공생한다는 낯선 감각에서 출발한다.

‘몸뚱아리집’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들은 스스로를 뽐내기도 하고, 때로는 숨기도 하며 예측할 수 없는 변화에 대해 각자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적응해 나간다. 또한 그들은 ‘몸뚱아리집’이라는 공간 안에서나마 아슬아슬하지만 나름대로의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내 작업에서 물감의 얼룩과 배어남이 만들어 낸 물성,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이 가져온 충돌과 어울림은 이전에 경험했던 낯설고 뒤엉킨 감각의 기억이 물화된 것이다. _ 2017. 04